닥치는대로 소설을 읽다 보니 언제부턴가 소설 속에서 시대변화를 감지하게 되었다.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고뇌, 원인과 결과에 따른 나의 후회와 반성 내지 죄의식 청산을
‘글’이라는 지극히 고루하지만 답이 없는 시각적 이미지로 구현될 수 있는 매체에 집착하게 되었다.
글과 그림이 결합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더욱 선명해지고 강화된다.
나는 문자가 아닌 이미지로, 특히 하위문화이자 삼류문화로 일컬어지는 특정 장르 소설 속
감춰진 트릭과 서사를 다시 밝혀내고 드러내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현 사회도 무언가 숨기거나 은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면 벽화처럼 하나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녹아드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내 작업은 주변 환경과 사회적 요소에 반응하는 결과물이다.
가장 최근에 전시했던 < 자유의 대가로 날개를 바칠 것 > (예술청, 2021) 시리즈는
소설과 현실의 이슈에서 맴도는 딜레마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마법사가 제안하는 두 다리의 대가로 목소리를 바칠 것, 반드시 12시가 되기 전에 돌아올 것과 같은
'인어공주의 딜레마'에 대한 서사이다.
내 작업의 전반적인 어조인 < Guilty Pleasure > (gallery 175, 2021)작업은
소설 속 인간의 군상에서 느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죄의식에 대한 것이다.
여기 저기에 같은 이미지가 반복되며 그 사이에는 무의미한, 뭔가 어울리지 않는 배경이 존재하며,
중간에 TV의 ‘지지직’처럼 보이는 네모난 화면들 앞에는 캔버스의 또다른 창이 팝업된다.
이렇듯 시기마다 소설 속 이야기의 배경, 신, 사회문제 등의 주제를 토대로
내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느끼는 현실과 감정들을 내러티브로 재구성하여,
팝아트와 같이 인쇄된 삽화처럼 이미지를 그려넣고 부정하듯 지우고 또 그리기를 반복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드로잉은 자기 성찰적 염원의 태도이다.
이미지 층을 얇게 쌓아 올려 이미지 간의 전후 관계를 드러내는 방식은 이미지 간의 관계를 더욱 복잡한 다층구조를 형성하며
혼란스러운 사회 현상 안에서 한 개인이자 화가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 실존적 고민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